임성은 교수
'킬러 문항을 수능 시험 문제에서 제외하라'는 대통령 지시로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변별력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쪽과 공교육 정상화 또는 학교 교육의 범위를 넘어서서는 곤란하다는 시각이 팽팽히 맞서는 상황이다.
킬러 문항은 수능 시험에만 있을까? 교단에서 시행하는 목사 고시, 장로 고시, 신대원의 입시 문제 등에서도 킬러 문항은 끊임없이 발견된다. 지엽적인 단순지식의 암기여부를 물어보는 것, 본문의 내용이나 주요 사건들이 등장하는 성경의 장과 절을 맞추라는 문제, 교회사 연도를 묻는 질문 등이 이에 해당한다. 출제 의도를 물어보면, 신대원 입시 경쟁률이 과열되던 때 변별력을 위해, 지금은 목사 안수자의 공급량(?)을 조절하기 위해서라는 답이 돌아오기도 한다. 구석구석의 내용을 알면 중요한 큰 내용도 더 잘 알지 않겠는가, 지엽적으로 보여도 그 정도의 내용은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옹호론도 나온다. 통과의례적 전통이라도 계속돼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들 어느 정도는 현실을 반영하는 설득력을 담고 있다. 문제는 성경이나 목사고시 고득점자가 목회와 사역을 잘하는가 하는 점이다. 지식에 대한 '완벽함'과 사역의 탁월함의 상관성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무슨 답을 하는지보다는, 무슨 질문을 하는지를 통해 사람을 판단하라'는 말이 있다. 목회와 사역은 말을 걸고 어루만지는 소통 과정이다. 답보다는 질문하는 능력이 더 요구되는 직분이기도 하다.
지금 한국교회가 위기 상황이라고 한다. 당면 위기를 돌파할 미래 지도자를 양성하는 해법을 찾는 데 킬러문항 논란을 대입해보고 싶다.
이사야 아들 이름 '마헬살랄하스바스'이나 바울이 로마로 이송하는 배 이름 '아드라뭇데노'같이 암기하더라도 특별한 교훈을 얻기 어려운 것보다는 교회나 신앙생활, 목회나 치리에 필요한 내용을 암기하도록 하면 더 낫지 않을까? 우울하거나 시험에 당한 성도들을 위로하고 권면할 때, 자녀교육이나 부부관계, 대인관계에 대해 권면할 때 사용하면 좋은 구절과 소재를 많이 아는 목회자가 더 많이 나올수록 좋은 일 아닐까? 인성이나 영성에 도움이 되거나 설교나 교리교육에 연계할 수 있는 것도 권장할 만하다. 나아가 이스라엘 12지파의 땅 분배 내용이나 행진 때 역할 분담에 대한 시험보다는 급변하는 한국의 고달픈 현실을 신앙과 믿음에 녹여낼 수 있는 현지화한 시험 문항을 더 개발하는 게 지금 우리가 할 일 아닐까?
단순한 교회사 연도보다는 특정한 사건의 인과 관계를 해석하거나 사건이 주는 교훈을 통찰하는 능력이 목회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일 수 있다. 틀리기 쉬운 문제보다는 꼭 알아야 하는 것을 테스트하자. 시험 통과용으로 일회성으로 암기했다 사라지는 RAM(random access memory) 스타일보다는 평생 동안 묵상하고 적용할 수 있는 지혜를 측정하자.
시험과 평가는 가르치고 배우는 방법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나라의 교육 평가가 교육 내용과 수업 방법을 지배하는 역류현상을 초래한다고 지적하는 교육 전문가들도 많다. 미래 지향적이고, 실천적이며,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공부와 연구를 유도하고 권장하는 심험과 평가 절차 마련에 교계가 지혜를 모을 시점이라고 본다. 때아닌 킬러문항 논란을 한국 교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힘들어하고 희망을 잃어가는 우리 사회에 신선한 방향을 제시하는 계기로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임성은 교수/서경대
<원문출처>
한국기독공보 http://www.pckworld.com/article.php?aid=9857093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