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편지를 쓰고, 오월엔 시를 읽는다.
오월엔 따로 시를 쓸 필요가 없다. 내가 보는 신록과 그대가 보는 꽃들이 서로의 그리움을 대신 전하는데 구태여 무딘 필치로 끄적거릴 이유가 없다.
편지는 외로워야 잘 씌어지고 시는 온유함과 잘 어울린다. 깊이 있는 산문은 가을에 씌어졌고, 가슴을 적시는 시는 봄날을 노래했다. 스산한 바람에 달빛이 고요히 찾아들면 누군가에게 편지라도 쓰지 않으면 몸살 날 것 같은 가을밤과 달리, 향긋한 내음 뜰에 가득한 오월엔 예쁜 시를 읽는다.
애써 시집을 찾을 필요도 없다. 도처에 시가 널려 있다. 산과 들, 가지에 매달린 연둣빛 새순과 길섶의 풀잎, 이팝나무의 하이얀 꽃잎, 그 각각이 한 편의 아름다운 시가 아닌가. 풀잎과 들꽃이 전하는 언어는 해독할 수고없이 오롯이 가슴에 젖어든다.
오월의 시인은 참 힘들었을 게다.
저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서정을 노래하고 있는 자연보다 더 나은 시를 쓰내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 그럼에도 많은 시인들이 숱한 시를 적어 냈으니, 이는 오기인가, 치기인가, 아니면 스스로 미치지 못할 줄 알면서도 춘심을 주체하지 못해 부끄러움을 감추고 슬몃 몇자 적어 본 것인가?
월트 휘트먼. 우리의 작가 이효석이 인류가 예수 다음으로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이름이라며 극찬한 그도, 그의 첫시집 <풀잎>을 내면서 표지에 이름을 감추고 출판 연도와 장소만 올렸던 이유도 이것이었나?
“대지와 태양과 동물들을 사랑하라/ .... / 자유롭게 살면서 그대 생애의 모든 해, 모든 계절, 산과 들에 있는 이 나뭇잎들을 음미하라/ 학교, 교회, 책에서 배운 모든 것을 의심하라...” 휘트먼은 <풀잎>의 서문에서 흡사 선지자처럼 외쳤다.
“풀잎이 뭐예요?/... / 내게 그것은 내 기분의 깃발, 희망찬 초록 뭉치들로 짜여진 깃발이다/ 아니면 그것은 하느님의 손수건이라 생각한다/ 향기로운 선물이자 일부러 떨어뜨려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휘트먼의 시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딩 선생이 학생들에게 낭독해 주어 더욱 유명해졌다.
“시가 아름다워서 읽고 쓰는 게 아니냐.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에 시를 읽고 쓰는 거다.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어. 의학, 경제, 법률, 기술 같은 건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요소들이지. 하지만 시와 아름다움, 낭만, 그리고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야.”
오월은 사랑이다. 싱그러운 잎사귀에, 자색빛 모란 송이송이에, 어머니 야윈 가슴에 꽂혀 있는 카네이션에 사랑이 배어 있다. 어머니는 젊은 느티나무 신록의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었고, 봄을 탔던 누나는 모윤숙의 ‘렌의 애가(哀歌)’로 밤을 새웠다. 그 시절 청춘의 연애편지에는 비슷비슷한 문장들이 자주 눈에 띄었는데 거의가 ‘렌의 애가’에서 따온 것들이었다. “밤이 깊었는데 나는 홀로 작은 책상을 마주 앉아 밤을 새웁니다.” 로 편지는 시작한다. 한낮에 쓰는 편지인데도. 그리고는 “램프가 피곤한 듯 좁니다. 이제 창을 닫습니다. 오늘 밤 그대를 생각함으로 어두운 밤 행복으로 지냈습니다. 날이 오래지 않아 밝아 올테니 아름다운 수면으로 이 밤과 작별하소서.”로 맺음한다. 그런 오글거리는 글귀에 가슴 설레하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 청춘들은 그런 클리셰를 참지 못한다. 최소한 이 정도는 나와주어야 입에 담을까 말까다.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하고 그를 부를 때는/ 우리들의 입 속에서는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나거든요..” 박성룡 시인이 가르쳐 준대로 ‘풀잎’, ‘풀잎’하고 불러 본다. 정말 휘파람 소리가 난다. 다시 “우리가 ‘풀잎’ 풀잎‘ 하고 자꾸 부르면/ 우리의 몸과 맘도 어느덧/ 푸른 풀잎이” 돼버린다.
싱그러운 풀잎은 지천으로 깔려 있는데 휘파람은 들리지 않고 격한 소음만 거리를 메운다. 라일락 야한 향기가 굳은 이성을 흐트려뜨려도 옹이 같은 가슴은 풀릴 줄 모르고 입술은 거짓과 허세를 만트라(Mantra)인 양 되뇌인다. 아름다움을 빼고나면 모든 것이 껍질이다. 풀잎에 얹힌 아침이슬이 보석보다 귀하며, 속마음 들킨 시 한 편이 윤슬처럼 지혜를 반사한다. 오월은 그것을 흠뻑 취하기에 딱 좋다. 지금보다 가진 것 없고 자랑할 일도 없던 궁색했던 그 시절에도 마음은 따뜻했고 눈빛은 맑았다. 우리가 자연과의 공감을 잃어버리자 사람에 대한 연민도 잊어버렸다. 우울은 언제나 자연과의 거리에서 비롯된다.
자연이 쓴 아름다운 시어(詩語)가 향기롭다. 풀잎. 나뭇가지마다 달린 눈록(嫩綠)의 어린잎새들. 하얗게 저며오는 아카시아 향기. 오월의 귀한 선물 앞에서 무엇이 달라져 있길래 나는 이토록 안쓰러운가? 그래도 오월이다.
<원문출처>
e대한경제 https://www.dnews.co.kr/uhtml/view.jsp?idxno=2021042917054631605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