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혁신지수 8년 연속 세계 1위, 글로벌 기업가정신 지수 세계 2위, 매출액 또는 종업원 수 3년 연속 평균 20% 이상 고성장하는 ‘가젤형 기업’이 많고, 창업 기업의 82%가 1인 기업인 나라. 진출기업에 대한 차별이 없고, 낮은 법인세(14%) 정책지원으로 친기업적인 환경을 조성한 유럽의 기술 강국. 4차 산업혁명의 선두주자로 떠오른 알프스의 나라 스위스 이야기다.
스위스 추크시
블록체인의 메카 크립토밸리
스위스 스타트업은 지난 2015년 유로화 대비 환율 하한제를 폐지하면서 스위스프랑화 가치가 30% 이상 급등하는 등 급격한 경제 침체를 겪으면서 시작됐다. 스타트업 활성화는 디지털 허브화를 위해 기업 및 대학과 비정부기구(NGO), 지방정부 등 150여 회원사가 모여 만든 ‘디지털스위스’의 영향이 컸다.
정부 주도가 아닌 지형적 특성을 활용해 자연스럽게 성장한 22개의 클러스터도 도움이 됐다. 대표적인 것이 가상화폐인 블록체인 성지로 떠오른 ‘크립토밸리(Crypto Valley·암호화폐 도시)’다. 암호화폐를 뜻하는 ‘cryptocurrency’와 마을을 의미하는 ‘valley’의 합성어다.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스타트업 성지라면 스위스 크립토밸리는 블록체인 메카다. 스위스가 처음부터 블록체인 클러스터를 표방한 것은 아니었다. 스위스는 가상화폐인 이더리움 등이 추크시에 들어올 때 신속한 행정지원으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암호화폐 장려정책으로 전 세계 개발자들이 모여들면서 그로부터 4년 후 추크시는 세계적인 블록체인 메카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시골이었던 이곳은 이제 글로벌 블록체인 회사 300여개가 들어서면서 세계적인 블록체인의 중심지로 탈바꿈했다. 기업 친화적인 지방정부가 우수한 산업 여건으로 전 세계의 블록체인 기업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이면서 인구 3만의 작은 도시에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있다. 특히 스위스가 금융 분야 감시가 매우 높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일관된 혁신 및 블록체인 산업 조성을 위한 정책이 많은 블록체인 관련 기업들을 스위스로 몰려들게 했다.
플라이어빌리티가 자사 드론을 소개하는 사진
마인드메이즈의 재활 치료용 AR·VR 솔루션 소개 사진
세계 최고수준의 공과대학
스위스의 대표적 스타트업인 ‘마인드메이즈’ ‘아바’ ‘베스트마일’ ‘가마야’ ‘플라이어빌리티’ ‘비키퍼’ ‘어드배넌’의 로고.
글로벌 투자은행 크레디트 스위스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약 4만개의 창업 기업 중 82%가 1인 기업이다. 또한 이들 기업 중에 약 400개는 매출액이나 종업원(10명 이상) 수가 3년 연속 평균 20% 이상 고성장하는 ‘가젤형 기업’이다. 스위스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그만큼 우수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통계다. 이 같은 영향으로 ‘Swiss VC Report 2019’ 자료를 보면 스위스 스타트업 대상 투자는 2018년 기준 대비 31.8% 증가한 약 12억3600만스위스프랑(약 1조4000억원)이 이루어졌다. 그중에서 정보통신기술(ICT) 및 핀테크 분야가 전체 자금 규모의 55%를 차지했다. 특히 2018년 기준 ICT 투자 비중은 2015년 19%, 2016년 30%, 2017년 32%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산업 규모도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4.5%, 종사자도 20만명이 넘는 주요 산업으로 성장했다.
취리히공대(9위), 로잔공대(18위) 등 세계 최고수준의 공과대학과 글로벌 ICT 기업이 다양하게 포진하고 있어 인재풀이 풍부한 것도 스위스 스타트업 성장의 기반이 됐다.
스위스의 혁신성·확장성·글로벌화도 창업에 유리했다. 혁신성 덕분에 웨어러블, AR(증강현실)·VR(가상현실), 자율주행 등 최신 및 미래 트렌드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확장성은 고기능성 제품의 제조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서비스 또는 종합 솔루션 제공업체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며 기반을 넓히게 했다. 글로벌화는 사업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해외로 나가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잡게 했다. 스위스 최초의 유니콘 기업 마인드메이즈(Mindmaze)는 글로벌화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중풍 등 뇌질환 환자의 재활치료용 AR·VR 솔루션을 만드는 마인드메이즈는 2011년 스위스에서 창업했다. 2014년 기업의 장기 전략 차원에서 AR·VR 시장이 발달한 미국의 실리콘밸리로 제품 개발 장소를 옮겼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스위스는 기업가정신의 질과 그 생태계를 평가하는 글로벌 기업가정신 지수에서 2018년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에 올랐다. 또한 80개의 평가기준을 토대로 국가경제의 창의성 및 혁신성을 측정하는 지표로서, 유엔 산하기구인 세계지식재산권기구에서 매년 발표하는 글로벌 혁신지수(GII)에서 8년 연속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스위스의 대표적인 스타트업으로는 중소기업의 소액파이낸싱을 위한 핀테크 플랫폼 어드배넌(Advanon), 웨어러블을 통해 여성이 임신이 가능한 배란기를 알려주는 AVA, 실내비행이 가능한 산업 및 보안용 드론 플라이어빌리티(Flyability)가 있다. 또 PC 사용이 어려운 현장 근로자용 메신저 앱 비키퍼(Beekeeper), 소규모 사업체를 위한 비즈니스 소프트웨어 벡시오(bexio), 고해상도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으로 농작물을 촬영하고 전용 소프트웨어로 농작물 상태를 분석하는 솔루션 가마야(Gamaya)도 스위스 스타트업이다. 무인 미니버스 운영 시스템인 베스트마일(Bestmile)도 많이 알려진 스타트업이다.
전규열 서경대 경영학부 교수, 취·창업센터부센터장
<원문 출처 >
주간경향 신문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3/0000042363?sid=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