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세근 서경대 겸임교수·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사무총장
‘스스로 있는 자’
모세가 묻자 하나님 스스로가 밝힌 자신의 이름이다. 히브리어로 ‘여호와’(혹은 야훼)다. 그리고 여호와를 우리 말로 풀면 자유(自由)가 된다. 스스로 말미암아야 스스로 존재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이름이 ‘자유’인 이유다.
옥스포드 대학교수를 역임한 저명한 신학자 C S 루이스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가장 고민한 것이 자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에는 하나님을 배신할 수 있는 자유도 포함돼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가 인간 본질의 핵심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우리 인생은 자유 대신 매임으로 가득하다.
지난해만 봐도 그렇다. 코로나 궤적을 따라 시기별로 키워드를 뽑아보면 우리의 매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코로나가 등장한 2월의 키워드는 창궐(猖獗)이다. 3월에는 격리(隔離)로 넘어간다. 4월에 접어들면 국민들의 고난(苦難)이 두드러진다. 마침내 대중은 확진자를 소외(疏外)시킨다. 이때부터 하자(瑕疵), 곧 상대의 흠결과 잘못을 찾아내기에 골몰한다. 코로나를 이용해 반대파를 공격하기 위해서다. 흡사 갱스터 같다. 매임은 이처럼 위기 속에서 강화된다.
이익집단 연구에 천착했던 맨슈어 올슨은 국가 역시 일종의 갱스터로 봤다. 갱스터가 금품을 갈취하고, 지주가 소작료를 걷듯이, 국가는 제복 입은 관리를 동원해 세금을 깔끔하게 걷고 치안을 매끄럽게 유지하는 꿈을 꾼다는 것이다. 이런 국가의 꿈이 가장 완벽하게 실현되는 순간, 곧 개인의 매임이 극대화되는 순간이 바로 위기의 때다. 전쟁 혹은 전염병 시기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이 평소 이상의 통제를 갈구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신나게 자원을 징발하고 치안을 강화한다.
페스트 창궐 당시 프랑스 정부가 펴낸 『페스트 행정 매뉴얼』은 “페스트가 발생하면 국가는 ^통금 실시 ^위반자 사형 ^유기묘 및 유기견 살처분 ^주택 열쇠 국가 관리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가작통(五家作統) 같은 상호 감시 시스템이 도입되기 십상이다. 오가작통은 춘추전국 시대를 거쳐 진나라 성립까지 중앙권력이 강화되는 과장에서 도입된 것으로 알려진다. 요즘 ‘식(食)파라치’가 기승이라고 한다. 상금을 노리고 5인 이상 모여 식사하는 장소만 찾아다니는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에도 이미 오가작통제가 작동 중인 셈이다.
매임을 끊고 자유를 얻기 위한 공자의 처방전은 성(省)이었다. 성은 자신에게 부과하는 가혹한 통제다. 제자 사마경(司馬耕)이 군자(君子)를 묻자 공자는 “안으로 살펴 거리끼지 않으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랴(內省不疚 夫何憂何懼)?”고 답한다. 못난 사람을 보면 자기에게도 이런 못남이 있지 않나 자성하라(見不賢而內自省也)는 말도 했다.
엔트로피는 시간이 흐를수록 에너지가 낮아져서 질서에서 무질서로, 부패로, 붕괴로 이어진다는 열역학 제 2법칙이다. 김영길 전 한동대 총장은 여기에 반기를 들었다. 생명체 내에선 에너지가 생성되고 흥왕하는 쪽으로 변한다고 말한다. 깨짐에서 복원으로, 다툼에서 화해로, 분열에서 화합으로 나간다는 얘기다. 김 전 총장은 이를 ‘신(神)트로피’라고 불렀다. 하나님의 사랑을 간직하면 사람은 엔트로피를 넘어 신트로피로 나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세상의 악을 어찌 일일이 상대할 것인가. 스스로를 살피면(省) 내가 변하고, 변한 마음으로 이웃을 대하면 그들도 변할 것이다. 새해다. 내가 먼저 매임에서 풀려나자. 그리고 우리를 자유케 하자.
<원문출처>
경북일보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65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