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대학교

Today
서경광장 > 서경 TODAY
서경대학교의
새로운 소식과 이벤트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권재욱 서경대 특임교수.jpg

권재욱 서경대 특임교수


많은 사람이 인정할 것이다.

 

이맘때가 되면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는 것을. 아스라이 높게 떠 가는 구름 한 조각을 보며, 스르륵 길 위로 구르는 낙엽을 보며, 차거워진 바람결, 묵은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을 보며, 돌아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선반 위 배낭의 먼지를 털고 헝클어진 머리를 가다듬고 때에 절은 바지를 빨아 입고 고요히 나서고 싶은 마음이 생겨 날 것이다. 이맘때면. 잎을 벗고 열매조차 떨구어 낸 헛헛한 나뭇가지에서, 비어가는 들판에서 더 이상 찾을 게 없는 빈자(貧者)의 상념으로 고개를 들면, 어머니 가슴 같은 언덕 너머로 아련히 떠오른다. 그곳이. 내 마음을 둔 곳, 여린 몸과 함께 꿈을 키워 온 곳, 내가 세상에 밀려 떠나 올 때 언젠가는 정갈한 의복을 입고 돌아 오리라 다짐한 그곳으로.

 

내가 살아갈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아름답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의외로 가까이 있다. 삶의 의욕을 잃었을 때 맨 먼저 생각나는 곳, 기특한 성취를 이루었을 때 맨 먼저 알리고 싶은 곳, 그곳이 내가 성실히 살아야 하는 이유였다. 그곳이다. 살기 위한 각축의 장 뒤꼍에서 숨 죽이다 산야가 숙살(肅殺)한 기운에 물들 때에 귀하게 내미는 얼굴. 우리들 마음 속에 하나씩 간직하고 있는 그것. 그곳이 소중한 것은 웅장한 열주 기둥 때문이 아니며 화려한 채색의 장식 떄문도 아니다. 산이 귀한 것이 단지 높아서가 아니라 나무가 울창하고 산새와 다람쥐가 노닐기 때문이듯. 그것 역시 천진한 시절의 꿈, 혹은 낭만의 추억 때문만이 아니라 흘려 보낸 벅찬 세월의 냄새조차 다정한 눈빛으로 안아 주기에 그리운 것이다. 자연이 철 따라, 조락의 시간이면 더욱 간절한 표정으로 이끄는 곳, 내 정서의 성소(聖所)이다.

 

이맘때 자연은 깊은 속내의 일단을 내 보인다. 봄날의 기지개 같은 발아(發芽)의 몸짓도 이쁘지만, 자연의 의뭉스런 의도와 재치는 서리와 함께 드러낸다. 넓고 푸른 이파리의 외식(外飾)을 벗고 땀 흘려 가꾼 과실도 탐하는 이에게 모두 넘겨 준 다음, 홀가분한 기분과 가벼운 재치로 이야기를 건넨다. , 꽃은 숨어서 피는데 단풍은 온 산하를 물들일까? 초록의 풀잎에는 맑은 이슬을 내리고, 어머니의 주름 닮은 단풍에는 하얀 서리를 준비시킨 걸까? 이맘때다. 예리한 칼날 같은 이파리가 한 계절에 벌레 먹은 낙엽되어 구르는 순리에 대한 암시와 함께 재치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때가. 돌아가고 싶다, 그곳으로. 그 길에는 늘 겸손이 빈 손으로 앞장선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 있고 해야 할 역할을 다하지 않았노라 떼쓸 이유가 없다. 나의 기억 속에 쟁여 둔 언어를 헤아려, 그곳에서 맞이할 이들에게 들려 줄 몇 줄의 문장만 마련하면 족하다. 나의 성실과 사랑과 인내의 사연을. 자연은 한 사물,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맡기지 않느니.

 

그리고 자연은 불평 없이 변화한다. 느티나무 상자는 목수가 그것을 짜맞추었을 때 아무런 불평도 없었던 것처럼 부서질 때도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는다. 누가 너에게 내일이나 늦어도 모레는 죽을 거라고 한다면, 너로서는 내일 죽으나 모레 죽으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내일 죽지 않고 일 년 후, 이 년 후, 혹은 십 년 후에 죽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버리도록 하라.” 위대한 견인주의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이다. 부귀영화의 상징 로마 황제의 생각이다. 하물며 한푼어치의 권력이나 명성, 두 푼어치의 부()정도야 바람 한 자락에 날려 가 버릴 먼지 한 점과 뭐가 다를까?

 

그저, 꽃을 잘 설명한 말에는 그 꽃의 향기가 묻어나듯, 나의 삶의 궤적을 이야기 할 때 미미한 향기나마 풍길 수 있기를 간구한다. 꽃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이 인간이 아니라 벌과 나비를 부르기 위함이고, 단풍은 사람들의 단풍놀이를 위함이 아니라 몸을 가볍게 하여 새 봄에 더 싱싱한 새잎을 매달기 위함이듯, 나의 삶도 누구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 충만하여 고운 향기를 주위에 흩어지기를 원할 뿐이다. 잠시, 한 순간만이라도.

 

가을은 겸손하다. 날마다 아침이면 향기로운 아침 공기가 척박한 거리로 스며들고 정결한 서리는 마른 풀섶에 내려 앉아 대지가 은혜로 가득하다. 구름 같은 털복숭이 개가 어슬렁 걸어 온다. 물까마귀 한 마리 홍시 두 개 매단 감나무 가지 위에서 노래한다. 외롭고 애틋하게, 향수 어린 목청으로 속삭인다. 그가 내뱉는 언어의 자모를 알지 못해도 의미는 분명하고 친밀하다. 내려 놓아라, 비워라는 젖은 소리,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는 은근한 계시. 자연에서 신을 본 철학자 스피노자는 많은 유산과 연금을 주겠다는 부유한 상인의 제의를 거절하면서 말했다. “자연은 적은 것으로 만족한다. 자연이 그러하다면 나도 그러하다.” 자연은 겸손하다. 가을은 더욱 그렇다.


<원문 출처>

e대한경제 https://www.dnews.co.kr/uhtml/view.jsp?idxno=202011041737325550253

List of Articles
Lis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이즈미 지하루 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칼럼: 요절한 남편 평생 사랑, 이중섭의 아내[이즈미 지하루 한국 블로그] file 홍보실 2022-10-07 73984

서경대 한택환 교수, 한국환경영향평가학회 우수논문상 수상 file

서경대 한택환 교수, 한국환경영향평가학회 우수논문상 수상 서경대학교 금융경제학과의 한택환 교수가 지난달 30일 부산대학교에서 열린 한국환경영향평가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한 교수의 논문 주제는 '다오...

권재욱 서경대 특임교수 칼럼:[시론] 가을은 겸손하다 file

권재욱 서경대 특임교수 많은 사람이 인정할 것이다. 이맘때가 되면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는 것을. 아스라이 높게 떠 가는 구름 한 조각을 보며, 스르륵 길 위로 구르는 낙엽을 보며, 차거워진 바람결, 묵은 햇...

‘2020학년도 서경대학교 Design Thinking 창업캠프’ 개최 file

10월 28일, 29일 이틀간, 서경대 유담관 Co-Working space서 언택트 방식으로 진행 서경대학교 창업지원센터(센터장 이석형 교수)는 ‘2020학년도 서경대학교 Design Thinking 창업캠프’를 지난 10월 28일(수), 29일(목) 양일간 교...

서경대, 제 1회 한국 가요 - 프랑스 샹송 경연대회 연다 file

서경대 한불문화예술연구소(CFCSK)가 제 1회 <한국 가요 - 프랑스 샹송 경연대회>를 오는 12월 29일 개최 한다고 30일 밝혔다. 본 경연대회 참가 자격은 대한민국과 프랑스 대학생 혹은 어학기관에서 양국 언어를 배우는 학생...

[진세근 서경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칼럼 : 漢字, 세상을 말하다] 和睦<화목> file

漢字, 세상을 말하다 인도네시아는 300여 종족이 모인 다민족 국가다. 언어도 400종이 넘는다. 국가 통합이 쉬울 리 없다. 어느 종족의 언어도 아닌, 말레이어 계통의 믈라유어(語)를 국가어로 채택한 이유다. 통합과 화목(和睦...

‘서경대학교 2020 생활문화디자인전공 졸업작품전’ 개최 file

‘제26막 제30장展'을 주제로, 텍스타일 제품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 29편 출품 10월 28일(수)부터 11월 1일(일)까지 5일간, 대학로 서경대 공연예술센터서 ‘제26막 제30장展'을 주제로 한 서경대학교 디자인학부(학부장 박...

'서경대학교 2020 시각정보디자인전공 졸업작품전' 개최 file

10월 21일부터 25일까지 5일간 대학로 서경대 공연예술센터서 다양한 분야의 독특하고 인상적인 예비 졸업생의 작품 29점 선보여  서경대학교 2020 시각정보디자인전공 졸업작품전 서경대학교 디자인학부(학부장 박혜신 교수) 시각...

[교육이 미래다] ‘교육혁신처’ 신설, 현장 중심의 체험 교육 통해 실무형 인재 육성 file

서경대학교가 글로벌 대학 평가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서경대는 ‘2019년 QS 아시아 대학 순위 평가’에서 500위권에 진입하는 등 글로벌 대학 평가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서경대는 실용중심 교육을 위한...

서경대학교, SBS 새 드라마 ‘펜트하우스’ 촬영장소 협찬 file

본교 재학생 40명 조·단역으로 출연···매회 엔딩 시 본교 로고와 교명 적힌 방송 자막 바도 노출돼 서경대학교가 SBS 새 월화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촬영 장소로 사용돼 대학가와 방송가의 주목을 받고 있다. ‘펜트하우스...

서경대학교 예술교육센터 ‘2020 인생삼모작 인생나눔학교 포럼’ 개최 file

'2020 인생삼모작 인생나눔 학교 포럼' 서경대학교(총장 최영철) 예술교육센터(센터장 한정섭 교수)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양우)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박종관)가 주관하는 「인생나눔교실」의 수도권지역 ‘2020 인생...

Today
서경광장 > 서경 TODAY
서경대학교의
새로운 소식과 이벤트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