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03 12:51
[한강타임즈] 지난해 10월경 서경대학교에서 수업을 하던 중이었다. 당시 서경대학교가 평창동계올림픽에 <메이크업 자원봉사> 참여를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문득 올림픽에 대한 나의 옛 추억이 떠올랐다.
‘올림픽’... 우리나라에서 개최하게 된 첫 올림픽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고운 한복을 입고 올림픽메달을 주는 학생으로 추천된 친구들을 우리는 소위 ‘쟁순이(메달을 담은 쟁반을 들고 있는 역할)’라고 불렀다. 그리고 기억 속에 나는 그들을 마냥 부럽게만 바라보았다.
▲김유경 교수 미용예술학(메이크업) 박사
현) 서경대학교 미용예술학부 외래강사
현) '아트윅 플러스' 종합방송 미술제작 방송분장 팀장
30여년의 세월이 흘러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두 번째 올림픽에는 이제 나도 올림픽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감회가 새로웠다. 나의 역할은 개막식과 폐막식의 행사참여자들의 메이크업을 해주는 것. 개막식 전에 2번의 예행연습과 한 번의 본행사가 진행됐다.
2주전부터 학생들과 컨셉에 나온 메이크업을 연습하고 만반의 준비 끝에 200여명의 학생, 교수님들과 첫 예행연습을 위해 평창으로 출발했다. 긴장감과 자부심 그리고 개막식에 참여한다는 설레임이 교차했다.
그러나 평창에서 가장 먼저 나를 놀라게 한 건 웅장한 경기장도, 화려한 무대도 아닌 우리를 맞이한 자원봉사자들이었다.
개막식에 퍼포먼스로 참여하는 수천명을 우리팀 200여명과 연결하고 메이크업 진행을 순조롭게 돕는 그들은 능력에 한 번 놀랐고 그들이 우리 학생들 또래였다는 데 다시 한번 놀랐다. 역할이 다른 학생들이 서로를 독려하면서 순발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미래에 그들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메이크업을 다 마치고 개막식을 시작하는 순간까지 긴장을 놓지 않는 그들을 보면서 자원봉사자라기보다는 행사전문가다운 면모까지 드러냈다. 예행연습까지 3번을 만나면서 마지막 날인 개막식 때는 시간에 맞춰 식이 진행될 때는 올림픽에 기여하고 역할을 해냈다는 생각에 뭉클해졌다.
개막식 1시간 전, 개막식 퍼포먼스들의 메이크업이 끝나고 개막식 성화 봉송주자 메이크업을 하게 됐다. 올림픽에서의 색다른 경험 중에 하나는 보안사항과 안전문제로 스탭이 혼자 이동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진행요원을 따라 마치 첩보 영화 한 장면처럼 특별한 존재라도 된 듯 다른 건물로 이동했고 메이크업 재료를 들고 특수임무를 하는 것마냥 비장함마저 들기도 했다.
그곳에는 하얀색 스키복을 입은 20대로 보이는 2명의 소녀가 앉아 있었다. 약간 긴장된 모습으로 나 또한 왠지 모를 긴장감이 전달됐다. 동양적인 눈매가 귀여운 한 소녀에게는 아이라인을 좀 두껍고 길게 그려주고 라이트를 받을거라 스파클이 들어있는 펄 베이지의 아이새도우를 해주고 눈썹도 좀 두께감 있게 해주면서 혹여 해보지 않은 메이크업에 당황했을 꺼 같아 “오늘은 축제날이니까 좀 반짝임이 있어도 이쁠꺼에요” 했더니, “저 이런 메이크업 첨이에요, 눈이 커보이고 화사해서 맘에 들어요” 하면서 수줍어했다.
옆에 있는 컷트머리 선수는 말이 없었다. 많이 어색해하고 말이 없었다. 이목구비가 작고 가름하고 살이 없는 얼굴이였고 피부는 좀 건조하고 잡티가 좀 있어 선수생활로 여느 또래의 여자처럼 관리는 못한 것 같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옆에서 같이 들어온 동료 교수님께서 조심스레 메이크업 하시는 모습이 보였다. 시종일관 아무 말이 없었는데 “메이크업 괜찮아요?” 하고 물으니 “네” 라고 조심스럽고 짧게만 대답을 했다. 그 짧은 대답 속에 억양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아 북한선수 구나.....’
북한선수라는 느낌이 들자, 자세히 보게 됐다. 이목구비가 작고 조심스러워하는, 유달리 낮가림을 하는 유아같다고 해야 할까. 움직임도 조심스러웠던 그 선수를 우리한국 선수가 말을 걸어주며 옆에 앉아서 웃어주고 있었다.
북한선수도 싫지 않은 듯 마주보고 있는 모습이 참 따뜻했다. 그 모습에 좋아 보인다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로. 메이크업을 진행한 시간은 20분 남짓이였고 서로 눈빛을 보고 웃어주고 옆에 앉아서 손잡아주는 두 선수를 본건 1~2분 정도였지만 내 기억 속에 그 둘의 모습은 뚜렷이 각인 돼 버렸다.
둘이 마주보고 웃는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북한 선수의 얼굴도 화사해졌다. 기분이 좋아졌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메이크업을 하고 나오는 가운데 두 선수의 감독님처럼 보이는 한 중년의 인사가 고개 숙여 고맙다고 인사했다.
드디어 개막식이 시작됐다. 준비하는 건물 안에 설치된 TV화면과 바깥에서 펼쳐지는 개막식이 이원생중계 되고 있었다.
성화 봉송 화면이 나오고 김연아 선수가 성화를 넘겨받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이들은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박종아 선수와 정수현 선수였다. 가슴이 뜨거워 졌다. 내가 본 이들의 따뜻한 눈빛은 누가 뭐래도 ‘평화’였다. 이들로 인해 이번 평창올림픽의 성화는 그 어떤 올림픽 보다 더욱 뜨겁게 피워 올랐던 듯 싶다.
<원본 기사>
한강타임즈 http://www.hg-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766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