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빙은 해동(解凍)이라고도 한다. 봄이 혹한을 밀어내는 모습이다. 중국에서는 파빙(破氷)이라고 쓴다. 해빙이 ‘절로 이뤄졌다’는 느낌이 짙은 반면, 파빙은 ‘의지와 힘으로 해냈다’는 메시지가 강하다.
중미 간 파빙은 1972년 2월에 찾아왔다. 닉슨 대통령은 마오쩌뚱(毛澤東) 중국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죽(竹)의 장막’을 열고 여드레간 베이징(北京)에 머물렀다. 하루를 분(分) 단위로 쪼개 쓸 만큼 바쁘다는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는 닉슨 앞에서 연주할 군악대를 찾아가 음악을 직접 듣고 선곡했다. 그만큼 신경을 썼다.
파빙의 계기는 탁구였다. 1971년 4월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제 26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계기로 마오 주석은 미국 팀을 초청했다. ‘작은 공(탁구 공)이 큰 공(지구)을 돌렸다(小球轉動大球)’는 말이 나왔다. 키신저 미 국무장관은 닉슨 방중을 협의하기 위해 비밀리에 두 차례 중국을 방문했다.
양안(两岸-중국과 대만) 간의 파빙은 2005년 4월 시작됐다. 대만 국민당의 롄잔(連戰) 주석과 중국공산당의 후진타오(胡錦濤) 총서기 간의 역사적인 만남이 성사됐다. 60년 만에 이뤄진 국민당과 공산당 최고지도자 간의 만남이다. 당시 양안 언론은 롄 주석의 방중을 ‘얼음을 깨는 여정(破氷 之旅)’이라고 표현했다. 롄 주석의 도착 일성(一聲)은 ‘타향을 떠돌던 나그네가 고향으로 돌아온 느낌(賓至如歸)’이었다.
9일 남북이 25개월 만에 마주 앉았다. 북한 대표단의 평창 겨울올림픽 파견은 물론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군사당국회담 개최까지 일사천리로 합의했다. 15일 예술단 실무협의에서는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 140명이 올림픽 기간 중 서울과 강릉에서 공연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건 이제부터다. ‘하루 추위로 얼음 세 척이 쌓이랴(冰冻三尺 非一日之寒)’라는 말이 있다. 느긋하게 해빙만 기다릴 일이 아니다. 소맷자락을 걷어붙이고 파빙에 나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그래야 남북 간에 쌓인, 세 척이나 되는 얼음을 걷어낼 수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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